고로쇠나무, 나를 탐하다
수필가/ 박 성 희
나무가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입술과 목구멍을 통해 창자로 들어왔다.
나는 단지 나무만 취했는데, 녀석은 혼자가 아니었다. 저 살던 푸른 하늘과 숲과 샘을 가져왔고, 새와 청솔모와 도룡뇽도 데려왔다. 그래서, 지금 내 뱃속엔 그들도 함께 있다.
자연의 향기가 난다. 그들의 움직임도 느껴진다. 배가 더욱 탱탱 불러온다.
점점 임신한 여자처럼 되어가고, 녀석은 강물이 되어 내 몸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닌다. 그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리는 소리가 난다.
처음 입안에 녀석의 액이 들어 왔을 때, 상쾌한 피톤치드 향이 확 풍겼다. 테르펜이라는 항균 물질도 있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나무의 입김이었다.
그들을 흡입하는 동안 나는 벌써 심폐기능이 강화된 것 같고, 체내에 쌓였던 독성 물질마저 다 빠져나간 듯 정화된 기분이었다.
나무가 산에서 산삼, 더덕, 당귀 따위의 약초와, 낙엽 썩은 물을 빨아먹고, 토끼와 노루, 멧돼지 같은 짐승의 배설물을 받아먹은 탓일까. 아니면, 햇빛과 눈과 비와 바람의 영양 때문일까.
이제, 내 몸은 숲 속의 공기로 가뜩 찼다.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끼고 놀았던 그 나무의 냄새였다. 녀석과 내가 다시 하나로 교감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온몸으로 받아 들였고, 녀석은 내게 흡수당했다. 둘은 금방 친화되어 자연스럽게 서로를 감싸 안았다.
벌컥벌컥 녀석을 들이키면 또 들이키고 싶고, 갈증을 풀려는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오줌보가 터지겠다. 참아야 한다. 가까스로 녀석의 수액 2.5L를 다 마셨다. 이제야 비로소, 나와 나무와의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나무는 내 몸이 되었고, 내 몸은 나무가 되었다. 피와 뼈와 살 속으로 싱싱한 나무의 기가 흐르고 있다. 뿌리를 박고, 줄기를 만들고, 잎을 틔우고 있다.
아, 꽉 찼다. 세포들마저 숨이 차다. 맥박도, 숨구멍도, 솜털도 긴장한다. 나무가 내 몸 안에서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 달큼하고 싸한 액이 내 입안에서 한 바퀴 휙 하고 도는 동안, 나무의 영혼은 죽지 않고 다시 환생한 거였다. 전에 살던 푸른 숲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에게서 말이다.
이대로는 기절할 것 같다. 나는 오직 해발 7백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의 척박한 땅에 사는 고로쇠나무에게서 나온 물만 마셨을 뿐인데, 이제는 버럭 나무가 나를 삼킨다. 탐한다. 받아들인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나무에게 영양분을 훔쳐서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소녀 적 넌 나의 예쁜 친구였지 않았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뜸 나무는 자기를 기억하느냐고, 어서 화장실에 가서 몸 안의 나쁜 찌꺼기들을 내보내라고, 그러면 곧 가뿐해 질 거라고 명랑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매년 2월에서 4월까지 자신의 수액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 즐거움이라고 했다.
나트륨과 마그네슘, 칼슘과 10여종의 미네랄이 주성분이며, 사람들의 위장병과 신경통, 관절염과 고혈압, 성인병과 심신을 풀어주는 일이 자신의 임무라고도 덧붙였다.
참으로 인정 많은, 고마운 나무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피를 내주고 있다. 여름, 가을, 겨울의 혹독한 날씨를 참고 버티다, 봄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치료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적당한 양의 수액만 채취하고 보호해 준다면, 그 나무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건강을 지켜 줄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관심 가져주는 일- 우리의 영원한 터전인 자연에게 보답하는 길이며, 하나 되는 길이다.
그것만이,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 수 있다.
(고로쇠나무 사진 출처/ 다음 블로그 <코시롱의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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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박성희
약력 /한국문인협회 회원,
청춘수필집/ 연지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