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랑에세이집 [ 나에게 마법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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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내작품

귀고리 / 박성희

연지아씨/박성희 2012. 5. 16. 11:40

                                                                           

 

                                                                   귀고리

 

                                                                                           수필가/박성 희

 

   “귀 뚫러 가자!”

   “싫어.”

   “3초면 되는데?”

   “그래도 싫어.”

 

   길거리 리어카에서, 시장 한 귀퉁이에서, 백화점 보석 코너에서 반짝거리는 귀고리를 보면 내 귀에 달아보고 싶다.

   귀부인처럼 품위 있고, 여대생처럼 발랄하고, 소녀처럼 귀엽고, 공주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탈바꿈해 보고 싶다.

   나는 종종 그런 표정을 상상하며 귀고리 가판대에서 서성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색색 구슬로 장식된 긴 인도풍 귀고리나, 특이하고 멋진 이태리풍 귀고리와, 금위에 박힌 진주,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진짜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하나같이 ‘고리’가 달려 있었다.

   가치 있는 거니까 도망가지 말라고, 고리 없는 집게 귀고리를 은근히 얕보고 있었다.

   “저 예쁘지 않나요? 저를 선택하시면 얼굴이 훨씬 돋보일 텐데요.”

   보석이 박힌 진짜 귀고리가 나를 꼬이는 것 같다. 가짜 내 귀고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더욱 눈부시게 반짝반짝 광채를 발한다.

   귀를 뚫어볼까 생각하고 집었다 놓았다 하다가, 안 뚫은 귀에 할 수 있는, 귓불을 집는 이미테이션 귀고리를 또 골랐다. 그리곤 늘, 귀와 아귀다툼으로 귀고리 집게가 귀를 너무 세게 집어 귓불이 퉁퉁 붓거나 헐렁해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다.

   내 보석 상자엔 한쪽 귀고리만 쓸모없이 쌓여 있다.

   가짜 진주, 큐빅, 도금한 금, 은, 구리, 그리고 온갖 싸구려 구슬들... .

   접착제와 떨어지고, 때가 끼고, 녹슬어 간다.

   서랍 속에서 짝 잃고 처박혀진 모습을 보니 미안해진다. 한 때는 내 얼굴을 장밋빛으로 물들게 했는데... .

   그냥 꼭 집고 아파도 꾹 참을 걸. 그랬으면 누가 초대해 주는 호텔 레스토랑이나 근사한 파티에서 고급 스럽게 빛날 수 있었을 것이다.

   가끔은 찰랑찰랑, 딸랑딸랑거리는 고리 달린 귀고리를 해보고 싶다. 진귀한 보석이 박힌 귀고리로 내 귀를 호사 시키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이 귀 뚫으러 가자고 유혹한 것을 뿌리친 후, 아직까지 못 뚫고 있다. 요즘은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다양한 모양의 예쁜 귀고리를 하고 다닐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머, 요새도 구멍 안 뚫은 사람이 다 있어요?”

선물가게 주인이 아니더라도 내 귀를 본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구멍 1개도 모자라 귀 한쪽에만 2, 3개는 보통이고, 어떤 이는 5, 6개씩 총 10개 이상을 뚫은 사람도 있다.

   코에 걸면 코고리, 귀에 걸면 귀고리다. 코에, 미간에, 눈썹에, 입술에, 혀에, 심지어 배꼽에도 구멍을 뚫는다. 남자는 물론이고 유아와 노인도 뚫는다. 언젠가 보았던 포르노 비디오의 배우는 그곳에도 당당하게 고리를 달고 있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귀에 구멍을 뚫으면 남편이 성공을 못한대.”

   나는 순수하게 살고 싶은 갈망에도 이유가 있지만, 남편의 출세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구멍을 뚫지 않기로 했다.

   귀 뚫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결혼 예물로 간신히 반지 하나만 달랑 받았는데, 그 때 만일 내 귀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면 두고두고 서운해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알뜰살뜰 살아야할 때이므로, 귀 뚫지 않은 것에 대해 참 대견해 한다.

 

중앙일보(캐나다) 2012.5.19일자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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