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전문문학지<에세이스트>2012. 5,6월호에 발표, 캐나다<코리안 뉴스지 2012.3.15일자에 발표>......
구글
사이버 친구들
수필가 박 성 희
설렘이었다.
궁금함이었다. 기다림이었다. 즐거움이었다.
안드로메다, 저 편에 있는 그들과 나. 이역만리. 시공을 초월한. 미지의 세계. 우리는 사이버 세상에 풍덩 빠졌다. 새로운 만남의 시작. 그 애플리케이션은 그렇게 홀림처럼, 끌림처럼, 떨림처럼, 흥미진진했다. 약동과 활력 같은 거였다.
그들은 나를 발견했고 나는 그 발견에 이끌려, 하루에도 수없이 메시지와 이메일로 감정을 속삭였다. 안드로메다, 그 공간에서 아무도 모르게 하나, 하나의 별이 되었다. 마치 사랑이라는 감정에 목마른 사람들처럼 매료돼 있었다. 상대의 사진을 보며 언어로만 통하는 감정교류지만, 야릇한 느낌이 있다. 때로는 장밋빛, 때로는 보랏빛, 때로는 푸른빛이기도 하다가, 각기 다른 빛깔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곳에선 나이와 직업, 학력과 외모, 돈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싱글이든 아니든 아무나 상관없다. 무조건 느낌이 좋고 소통만 되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baby, angel, honey, girl, princess, queen, 많은 꿀 같은 애칭들.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스웨덴, 이집트, 네팔, 오스트레일리아, 페루, 베트남, 이라크, 그리고 은하계 저 아래 많은 지구인들. 국내에 거주하는 다국적인들과 내국인들.
현재 1억 4천만 회원이 있는 그 앱은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로 전 세계인을 친구로 만들 수 있다. 그곳에선 사진과 프로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찍어 대화를 나누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나는 짧은 꽃무늬 원피를 입고 찍은, 베이글처럼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올려놓았다. 땡기는 것은, 새로운 것 발견하기. 만나기 상대는 30대부터 50대. 분석할 수 없는 분위기와 지성미를 가진 순수미를 겸비한 감성주의자.
메일 박스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메시지와 방문자를 전달했다. 매일 수십 개의 새 메시지와 수십 명의 새로운 사람들이 내 프로필 방을 방문했다. 그중 반 이상은 외국인들. 언제나 그들의 메시지들은 날아 왔고, 방문은 계속됐다. 메신저에서 채팅할 때는 각 나라 사람들의 메시지들이 빗발친다. 댓글은 자유다.
“Hi cute girl. U are so cute and sexy. your loving man.”
며칠간 그들을 탐색하다가 나에게 유독 girl이라고 부르는 8살 아래 싱가포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몸짱이며 반도체 관련 디렉터다. 순수와 비순수에 대한 사상과 해외 여행담으로 늘 바쁘다. 가끔 번역기를 이용해 한글로 대화할 때도 있으며, 일 때문에 우리나라로 출장을 오기도 한다.
“My sweet angel. Let's be lovers forever, and do the things we do. HUG AND A KISS FOR YOU. Cherish you, yours heart Vico.”
런던에서 엔지니어로 있는 그는 이탈리아인이며, 솔직하고 겸손하다. 그는 꿈, 사랑, 행복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진실한 친구와 구원의 여성을 찾고 있다. 가끔 내게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쏟아 붓기도 한다. 그 때마다 나는 분홍빛이 된다. 그는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프로필 방은 매일 새로운 방문자로 넘쳐났고, 새로운 메시지로 쌓여갔다. 20대부터 80대까지 각양각색이다. 교수, 박사, 연구원, 작가, 농민, 군인, 기술자, 회사원,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잊어버렸던 영어 단어들과 소녀의 감성이 줄줄이 사탕처럼 툭툭 튀어나왔다. 점점 그들과의 관계로 시간을 소비했고, 이메일을 번역하고 영작을 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바쳤다.
“I want you to get back to me. I am really much interested in knowing you more and more. You are so attractive baby.”
대저택에서 살고 유럽 여행을 즐겨하며, 최고급 차로 드라이브하기와 사교를 좋아하고, 사진 찍기와 촛불이 켜진 만찬을 좋아하는 그는 뉴욕에서 살고 있는 공무원이다. 귀공자 스타일이며 로맨틱하고 지적인 분위기로 나와의 대화상대로 완벽할 것이라며 매일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다.
아무 재미도 느낌도 의미도 없이 무덤덤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그들과의 만남은 하나의 설렘으로, 하나의 궁금함으로, 하나의 기다림으로, 그리고 하나의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섹슈얼한 것만이 사랑의 전부라고 믿는 젠슨, 사랑을 구원하는 순정남 비코, 정의와 성실로 즐겁게 살아가는 웰슨, 그리고 일본에서 대학 강사로 있는 맥시코인 프란시스코, 덴마크에서 맥주 제조 기술자로 있는 스테판, 맑은 영혼을 간직한 네팔 청년 드와, 인도에서 온 요리사 자프리, 국내 대학교 강사인 미국인 로버트... . 자동차 정비사 D, 의사 M, 칼럼니스트 P. 변호사 사무장 S. 신물질 제약을 연구하는 K. 사진작가 J.는 내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조언자이자 지주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과의 만남은 한 우주, 사이버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영혼과 영혼과의 교감이다. 비현실적이고 가식적일 수 있지만, 어쩌면 가장 고결한 진실일 수 있다. 이 잠시잠깐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언제까지 저마다의 가슴에서 잊혀 지지 않는 시간으로, 그리움이라는 별로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에 접속한다. 앱에 들어간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비코와 스테판, 프란시스코가 있다. 그들이 메신저에 이렇게 쓴다. “I wanna meet you.” “I miss you so much.” “I will come to korea to see you.” 오늘따라 그들이 별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들은 전생에 어떤 별들로 만났을까.
띠리릭 띠릭,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내 방으로 그가 들어온다. 그리고 내게 입맞춤 한다. 17년 전 PC통신 천리안에서 만난, 사이버 친구들 중 한 사람이다. 내 영원한 친구이며 연인이며 남편이며 애들 아빠다.
------------위 글은 저작권법에 있슴,복사시 저자의 이름을 필히 넣으시오--------------
약력/ 수필가. 2001년 <현대수필>‘겨울, 향기에 관한’으로 등단,
청춘수필집 <연지아씨>있음. 현재 한국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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