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랑에세이집 [ 나에게 마법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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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아 언니 / 박성희

연지아씨/박성희 2012. 6. 1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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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아 언니

 

                                                                                                                수필가/ 박 성 희

 

    이 산으로 가면 쑥국 쑥국

    저 산으로 가면 쑥쑥꾹 쑥꾹

 

    어디로 가나 이쁜 새

    어디로 가나 귀여운 새

    울어 울어 울어 울음 운다.

 

   연분홍 한복을 입은 언니가 춤을 춘다.

   얼핏 보이는 흰 버선발이 애처롭다. 애창곡인 ‘새타령’을 간드러지게 부르며 웃음을 뿌리는데, 한 많은 여인처럼 보인다.

   그날, 언니의 모습은 나비 같고, 선녀 같았다.

   “고모, 고모부, 나 참 기분 좋우. 저번 아버지 칠순 때, 우리 동생들 짝지어서 큰절하고 춤추고 노래한 거 보셨지우. 이젠 아무 여한이 없다우.”

   언니는 뿌듯하고 든든했다.

   그 동안 온갖 기술을 배워 동생 넷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살림을 도맡아왔었다. 이제 언니의 책임은 다 끝난 것이다. 마음껏 연애도 하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꽃다운 시절 다 보낸 38살 언니의 얼굴엔, 어느새 고단한 삶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름 몇 개가 표창처럼 새겨져 있었다.

   늘씬한 키에 얼굴이 참 예뻤던 언니는, ‘연옥’이라는 고운 이름 대신 ‘흥아’라고 불렸다. 어려서 하도 울어대 흥아, 흥아 했던 것이, 그만 그렇게 불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 걸맞지 않게 흥이 많고 싹싹해 누구나 좋아했다.

   쉬는 날에는 멀리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우리 집 농사를 도왔던 언니는 어디서나 부지런한 일꾼이었다.

   “성희야, 오이 따러 가자. 가지 따러 가자. 저녁 때 도너스 해 줄게.”

   어느 날인가 일하기 싫어, 개울에 가서 숨은 나를 동네 마이크를 통해 찾아서 일을 부리고는, 저녁때 내가 좋아하는 도넛을 만들어 주었다.

   침도 잘 놓고, 손금도 잘 보고, 옷도 잘 만들고, 요리도 잘하고, 이야기도 재밌게 하는 언니는 못하는 게 없었다.

   그러던 언니가, 어느 날 집을 나가더니 3년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에 꼭꼭 숨었는지 아무도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슬픈 몸이었다.

   못 먹고, 못 놀고, 일만했던 날들의 대가가 병이 된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언니의 건강을, 그 세월을 보상해 줄 것인가.

   식구들이 언니의 병원에 드나 들 때, 나는 한 남자와 사랑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언니한테 가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아이구, 우리 성희 이젠 시집갈 때 다 됐네. 애인 생기면 제일 먼저 보여줘야 돼.”

   그렇게 서울 사는 외사촌 흥아 언니는, 언니 없던 내게 각별했다.

   한의사처럼 남의 병은 잘 고쳐주면서 왜 자신의 몸 하나 돌보지 못하고, 고독과 냉기가 흐르는 허름한 방에서 숨어 지내야만 했을까.

   사랑도, 결혼도, 아이도 가져 보지 못한 언니가 가엾다.

내가 결혼식을 올릴 때 언니는 몹쓸 병마와 싸우고 있었고,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때 언니는 죽음과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몇 번 언니를 보러 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언니의 슬픈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다. 아니, 그 슬픔이 전염될 것 같아 두려웠다. 간신히 얻은 행복이 깨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욕심을 부리는 동안, 백화만발한 꽃잎이 난분분하던 어느 날 언니는 그만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움츠렸던 날개를 쫙 펴고 푸드득 푸드득 날아갔다. 이 산, 저 산, 쑥국새 되어, 꾀꼬리 되어, 멀리 멀리 날아갔다.

   그 해엔 유달리 새들의 울음소리가 별스럽게 들렸다.

 

 

 

 

 

 

 

.....................2012. 6.14일자 코리안뉴스 신문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