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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작품 월평 내가 본것만 내꺼

<한국산문>2013.4월호

연지아씨/박성희 2013. 4. 3. 11:50

201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예지<한국산문>2013.4월호에 게재

<한국산문> 이달의 수필 월평 ; 《수필과 비평》2월호

수필의 소재는 광범위하지만 대체로 신변에서 일어나는 사물의 체험이 중심이 된다. 그렇지만 그 소재를 통해서 개인을 넘어 우리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보고, 그것을 바로 이끌어가려는 시각으로 대상을 파악한다면 이는 수필로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달의《수필과 비평》(통권 136호)에 실린 박성희의 <가면, 닉네임>은 이러한 견지에서 주목할 만한 글이었다. 사람이 얼굴을 감추고 딴 모습을 보이려 가면을 쓰고, 이름을 감추고 엉뚱하게 내미는 호칭이 닉네임이다. 작가는 ‘맨얼굴, 본명(本名)에는 숨김이 없다’고 전제하고 사람은 선한 본성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가면을 쓰고, 가명을 쓰고, 덩달아 행동도 그렇게 따라간다고 보았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가면과 닉네임을 쓰면서 산다고 볼 때 <가면, 닉네임>은 현대의 우리 현실을 다룬 건전한 수필이라 하겠다.

얼굴을 가린 사람을 보면 나도 몰래 움찔 뒤로 물러서게 된다. 가면 쓴 사람, 복면 쓴 사람, 마스크 쓴 사람, 선글라스 쓴 사람,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들은 왠지 나를 거북하게 한다. (중략) 얼굴의 일부분을 가린다는 것에 왠지 거부감이 든다,

인터넷 속에서도 자신의 분명한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닉네임이라는 가명을 쓴다. 현실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만으로도 불분명한데 닉네임이라는 가면까지 쓰니 더욱 조심스럽다. 닉네임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사이트를 자유롭게 활개를 치고 다닌다.
-박성희의 <가면, 닉네임>부분

그러면서 작가 자신도 닉네임을 쓴다. 사교적 공간이 카페나 블로그, 채팅 공간에서 쓰고, 관청이나 병원 사이트에 정보나 상담이 필요할 때면 닉네임을 쓴다. 이유는 자신을 감추고 마음대로 주장하고 상담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명을 드러내는 곳에서는 하고 싶은 말도 자제하고 조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또 작가는 어느 카페에 글을 올렸다가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어떤 회원이 나와서 글을 혹평할 뿐만 아니라 악성 댓글로 작가를 비난했는데 닉네임으로 나오니 상대가 누구인지를 몰라서 적절한 대응도 못하고 망신만 당했다.

사이버와 닉네임이라는 이중가면을 쓰고 나오는 인터넷에는 어디서나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 난무한다. 가면을 쓰고 특정인에 대한 정치적 목적이나 미움 때문에 과격한 언어를 남발하는 것은 폭력이고 가해행위다. 함부로 휘두른 막말에 공인들의 인생이 결딴나고 죄도 없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생명을 잃는 수도 있다.

존경받는 지위나 신분에 이른 출세한 사람의 다수는 언제 가면이 벗겨질지 모른다는 망상으로 불안해한다고 들었다. 스스로를 부정하며 참모습이 아닌 이중성에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것이다. (중략) 교육을 받고, 수양을 쌓고, 인간본성을 잃지 말아야 함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의 아니게 가면 아닌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박성희의 <가면, 닉네임>부분

어쩌면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가면을 쓰고 닉네임을 내밀며 사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런 사회현상을 우려하며 자신은 ‘숨김이 없는 나, 진정한 나로서 닉네임이라는 이중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비평/ 이종열 (수필가)........

*<수필과비평>에서 제 작품을 선정, 월평해주신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이종열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사진과 약력 월평을 게재해 준 <한국산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