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랑에세이집 [ 나에게 마법걸기 ]

모든 진지한 바람은 마법처럼 반드시 이루어진다! 순간순간 살며 사랑하며 부여잡고픈 기억을 담다!

중앙일보 내작품

난, 첸나이 / 박성희

연지아씨/박성희 2013. 11. 16. 11:36

 

 난, 첸나이

                                                                                                       수필가 박 성 희

 

 

 

   가자. 그냥 가자.

   부딪히기로, 저질러보기로, 일탈하기로 했다. 그 어떤 신선한 일들도 탄력도 긴장감도 없는 이 침체된 공간을 도망치듯,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설렘, 신비롭고 흥미로운 기대감 같은 것들에 나는 오랫동안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비행을 시작 하자.

   나, 그 때, 엉겁결에 결혼해버린 것처럼. 진실한 사랑을 찾아 헤맨 것처럼.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 가 보기로 했다. 한사랑 찾다 지쳐버린 서른의 막다른 어느 날 한 남자에게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결정해버린 것처럼 사랑이란 덫에 몸을 던지듯, 내가 원하는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되진 않았지만 모든 것 다 내 팽개치고 어린  두 애들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 인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젠 더 이상 뒤돌아보면 안 된다. 괜한 걱정도 해선 안 된다. 그냥 가면 되는 것이다. 모험하듯 살아보면 되는 것이다. 도전해 보는 것이다. 내 신혼생활이 가난이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시간이 흐르자 헝클어진 실마리가 풀리듯 시작도 끝도 알 수없는 걱정들이 술술 풀어질 것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긍정하고 해결해 보기로 한다. 인생이란 지금 당장 좋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고, 나쁜 게 꼭 나쁜 것만이 아니므로 내게 닥친 모든 것 다 받아들이기로 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스리랑카 콜롬보를 거쳐 인도 첸나이까지 꼬박 13시간을 앉아 있었다. 자도 자도, 가도 가도 목적지까지 닿기가 얼마나 멀고도 먼 지. 첸나이에 도착하니 알싸한 냄새와 텁텁한 공기가 싸하다. 폭탄처럼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 짙은 흑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 암울하거나 화려하거나한 색색의 빛깔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구름떼, 그리고 그 하늘과 맞닿은 들판에서는 거친 야성이 숨 쉬고 있다. 꿈틀대고 있다.

   렌터카를 타고 시내를 거쳐 남편이 얻어놓은 아파트를 향해 한 시간 정도 달리는데 도로는 한마디로 뒤범벅이다.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 소, 마차, 릭샤, 자동차로 뒤엉켜 달린다. 그런데, 무법천지이며 무질서한 곳에 보이지 않는 법과 질서가 있다. 운전대와 통하는 길도 한국과 반대다. 부딪힐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가난과 부, 깡 마른사람과 뚱뚱한 사람, 못남과 잘남, 어둠과 밝음, 썩은 내와 향기로움. 낮은 신분과 높은 신분계급. 극과 극이 대비되는 세계다. 나는 이 특이하고도 신선한 흥미로 가득 찬 나라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과 흥분에 쌓일 것이며 약간은 실망과 복잡해지는 심정을 얼마간 느낄 것 같다. 하지만 어쩌랴. 나 이미 이곳에 발을 담가버린 이방인. 이미 이 안에 내가 있음에 다 감수하기로 한다. 사랑하기로 한다. 향유하기로 한다.

   코코넛나무와 망고나무가 가로수처럼 쭉 서 있는 도로를 드라이버는 연신 빵빵거리며 질주하는 이동수단들을 제치고 앞으로 내달렸다. 곳곳에는 뿔 달린 소, 염소들이 한가하게 놀고 있고, 눈치껏 건너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어떤 오토바이에는 5명이나 타고 있거나, 돌도 안됐을 법한 어린 아기를 한손에 받치고 달리고 있다. 아기는 뭣도 모르고 탓을 것이다. 마치 우리 애들이 멋모르고 비행기를 탄 것처럼. 한참을 달리니 비교적 정돈된 도로와 고급 건물들이 길게 들어서 있고 거대한 IT 단지를 휘돌자 렌트한 아파트가 나왔다.

   남편은 무슨 계산을 하고 집을 얻었는지 한국인이 하나도 없는 동네에다 애들 학교마저 한국인이 하나도 없다. 그저 어떻게든 살게 마련이야, 금방 영어를 익힐 걸, 하며 제 인생 알아서 살아보라는 것 같다. 게다가 끈이라고 믿었던 본사 직원들도 곧 귀국할 것이라고 통보한다. 이젠 철저히 혼자다.

   한국의 땅덩어리보다 크고 인구 6천만인 이곳 타밀나두주의 인디언들은 타밀어를 쓰거나 힌디어를 쓴다. 좀 배웠다는 이들만 영어를 할 줄 안다. 어떤 땐 그들의 발음에 따라 반만 알아듣거나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대화를 하다보면 소통이 된다. 위 층, 아래층 인디언들이 먼저 헬로우 하고 말을 건다. 밖으로 나가면 온몸을 긴 천으로 휘두른 사리를 입은 여인들, 알몸에 아랫도리만 치마처럼 입은 남성들, 신식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온몸에 장신구를 잔뜩 달고 황인종을 처음 보는지 신기하게 쳐다보고 미소 짓는다.

   아이들이 입학한지 일주일째다. 유치원생 둘째는 집에 있어 봤자 따분하니 다니는 듯 했고, 호기심으로 가득 찬 5학년 첫째는 같은 반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다니는 것 같다. 우리의 바람은 공부가 아니라 색다른 다양한 경험과 재미 찾기다. 집으로 오는 길에 둘째가 생글거리며 말한다. “쟤가 날 좋아해.” 뒤를 돌아보니 걔네 엄마는 눈만 내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둘러맨 이슬람교 여인이다.

   지구 저 너머에 있는 이국에서, 이전의 나 아닌 다른 나로, 생활패턴이 완전히 뒤바뀌어 살고 있다. 어릴 적 읽었던 인디언들이 나오는 동화책속으로 들어온 듯, 봐도 봐도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풍경들, 새로운 앎들이 즐겁다. 이 모든 낯설음이 나를 설레게 하고 흥분케 한다. 나, 이곳에 있는 한, 신밧드의 모험처럼,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 아, 인도, 첸나이, 몽롱하다. (2013. 11. 8.) 2013. 11. 15일자 중앙일보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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