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랑에세이집 [ 나에게 마법걸기 ]

모든 진지한 바람은 마법처럼 반드시 이루어진다! 순간순간 살며 사랑하며 부여잡고픈 기억을 담다!

중앙일보 내작품

예스 다스 / 박성희

연지아씨/박성희 2014. 3. 22. 02:47

 

 

예스 다스

 

                                                                                                          박 성 희

 

   그놈의 눈빛은 늘 갈망에 차있다.

   흑갈색 눈동자에 크고 깊은 눈. 순해 보이면서도 반항적인 눈빛. 쳐다보면 나도 몰래 압도당하는 눈길. 또렷이 쌍꺼풀진 눈의 속눈썹은 하늘을 향해 날것처럼 샥 올라가 있다. 언제라도 카스트를 거역하고픈 욕망이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다.

   나이는 28세. 이름은 예스 다스. 10학년 졸업.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음. 적절하게 검은 피부를 가졌고, 혈기왕성해 보임. 연애결혼을 한 걸로 보아 하급 계급 같으며 6살 딸과 4살 아들이 있고, 장모와 함께 살음. 운전경력은 8년이라고 함.

   내가 그를 만나기까지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거짓말을 했거나, 느려 터졌거나, 멀리 살았거나, 냄새가 심했거나, 아주 새까맣거나, 하는 문제로 퇴짜를 놓고 얼떨결에 만난 기사가 바로 다스다.

   그는 애들 입학식 날 출근하기로 했던 기사가 오질 않아 애를 태우고 있을 때, 옆집 기사가 급조해준 기사다. 마침 그도 놀고 있었던 터라고 하니 저는 저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굴러들어온 떡이었다. 게다가 집도 오토바이로 달리면의 5분 거리니 애들 드롭과 픽업은 문제없을 거고, 영어를 할 줄 아니 잘 됐다.

   그는 우리를, 나를 데리고 어디든 달린다. 오토바이, 릭샤, 자동차, 아무데서 건너려고 뛰어든 소들과 사람들로 복잡한 도로를 요리조리 잘도 살피며 내달린다. 백미러를 통해 흘낏 보이는 눈썹과 눈동자는 강렬하게 이글거리고 있다. 잘 다듬어진 구레나룻에서는 대대로 물려받은 카스트에 대한 반감이 얼핏 스친다.

   어느 날 그의 아들 생일이라고 해서 먹을 것을 한보따리 사가지고 우리 애들과 그의 집에 갔었다. 부인과 장모가 사리를 입고 맨발로 뛰어나와 반긴다. 집이라고 들어가 보니 흙으로만 둘러싸여 굴속 같다. 시커멓고 습습하고 쾌쾌한. 생일상은커녕 먹을 것도, 어디 앉을 데도 하나 없다. 집 앞에 돌 몇 개 올려놓고 불을 피우며 그저 맹물만 끓이고 있었다. 그래도 뭘 먹고 사냐고 하면 커리, 짜파티를 먹는다고 한다. 불면 후 날아가는 인도 쌀에 향 짙은 커리와 밀가루에 물만 넣어 반죽해서 구운 짜파티. 노상 먹는 게 그런 식 같다. 그 집 애들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뛰어놀았고, 우리 애들은 멀뚱멀뚱한 눈으로 꼼짝없이 서 있기만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누가 초인종을 누르더니 분홍색 케이크를 내민다. 다스다.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내민 선물. 몇 푼의 돈을 모았다가 근처 호텔서 사왔다며 자랑이다. 먹을 것 입을 것도 없으면서 우리에게 선물을 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선물할 생각조차 못하고, 어떡하면 더 부려먹을까만 생각했다.

   지난주엔 첸나이를 벗어나 칸치푸람에 사는 한국 친구들을 만나러 왕복 4시간 거리를 달렸다. 물어물어 찾아가 도착하니 주변엔 그와 같이 시간 보낼 사람은 하나 없고, 햇볕은 죽어라 내리쬐고, 마담이란 여자는 깔깔대며 수다 떠느라 바쁘고, 애들은 왔다갔다 노느라 신났다. 그는 혼자서 그 광경 바라보며 오도카니 내 분부만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배는 고파지고, 돈은 없고, 왈칵 서러워지고, 그렇게 한자리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5시간을 내리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안 돼 보였다.

   집에 가는 길에 그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려고 끼니 될 만한 것을 찾아보니 없다. 한참을 달린 후 요깃거리를 사 주자 시들했던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남들보다 월급을 많이 줘서 점심은 스스로 해결하라고 했는데, 물로만 배를 채우거나 굶는다. 먼 거리를 달리는 날에는, 더 고마운 날에는 백 루피씩 줘도 아깝지 않겠다.

하루는 그가 골골해져서 다른 기사를 데리고 아침 일찍 왔다. 매일아침 찬물로 머리감고 몸을 씻어서 독감에 걸려 병원에 가야한다며 임시기사를 데리고 온 것이다. 인도 특유의 냄새는 깨끗하게 씻지 않아서 난다. 더운 나라에서 땀은 쏟아지는데 가난한 자들은 씻을 물조차 흔하지 않다. 씻을 데도 마땅치 않은데 매일 몸을 씻고 왔다니 얼마나 갸륵한가.

   냄새나지 말라고. 불쾌하지 말라고. 일해서 돈 벌고 싶다고. 6개월째 우리 집 기사를 하면서 늦게 오거나 결근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애들 학교 못갈까 봐 걱정해본 적이 없다. 어디를 가자고, 무엇이 필요하다고, 걱정거리가 있다고 하면 언제나 노 프라블럼이요 만사 오케이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물어보고, 찾아봐서 어떻게 해서든 해결을 한다. 나를 만족케 한다.

   그는 언제나 똑같은 반지 귀걸이 팔찌 시계를 끼고, 자주 머리모양과 염색을 말갛게 하고 나타나 은근히 멋지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아직은 한껏 멋 부리고 싶은 풋풋한 나이였다. 오늘은 못 보던 선글라스에 오묘한 향수를 뿌린 그가 심상치 않다.

   조그만 나라에서 온 평범한 아줌마를 ‘마담’으로 불러주고, 매일매일 마님 된 듯 기분 우쭐하게 만들어주는 예스맨 다스. 낡은 옷이지만 깨끗한 모습으로 언제라도 고분고분 예스 마담, 오케이 마담하며 늘 내 주변에서 집사처럼 있으니, 나의 타국 생활은 신분상승 된 양 도도해진다. (2014. 3.14.)

 

 

 

  ....중앙일보 2014. 3. 21.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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