쳐다보는 사람
박 성 희 수필가
이탈리아 식당은 사람들로 빽빽했다.
모두들 군침 넘어가는 음식을 시켜놓고 먹고, 마시고, 인간의 본능을 쾌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운데 테이블에 유독 눈길이 가는 여자가 있다.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만 흘깃흘깃 쳐다본다. 빠짝 마른 몸뚱이의 그녀는 무척 허기져 보였다. 나는 그녀가 옆 테이블에서 아기와 함께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요리를 푸짐하게 시켜놓고 배부르게 먹고 있는 가족의 하녀라는 걸 짐작한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숨지도 못하고 낯만 뜨거워졌다. 차라리 그녀에게 아기를 돌보게 하거나, 음료수라도 한잔 마시게 하거나, 밖에서 기다리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곱 살 때였다. 나는 어떤 아저씨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까만 자동차에서 까만 양복차림으로 나오더니, 까만 콜라를 한 병 사서 마시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맛이 길래 저리도 짜릿하게 벌컥벌컥 마셔댈까. 순간 그 아저씨와 눈이 딱 마주쳤다. 우리는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아저씨는 꾀죄죄한 시골 계집애를 쳐다봤고, 나는 도시냄새 푹푹 나는 아저씨를 쳐다봤다. 멋지기도 했지만 콜라 맛이 궁금해서 쳐다봤다. 눈치 빠른 아저씨는 내게 콜라 한 병을 사주고 휙 떠났다. 가겟집 아줌마는 얼른 내손의 콜라병 낚아채더니, 컵에 한 모금 따라주고 병나발을 불었다. 나는 아줌마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아직도 콜라병 뺏긴 게 억울해서 그때의 콜라 맛을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씩 아이쇼핑 하러 백화점에 간다. 지하주차장에서 주구장창 차만 지키고 있는 기사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한 번도 백화점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그는 한참을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더니 안 간다고 한다. 낡은 옷, 찢어진 신발, 스스로를 낮게 평가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주눅 들기 싫은 거였다. 괜찮다고 해도 안 간다기에, 짐을 들어달라고 하니 따라온다. 백화점 안의 화려하고도 고급스런 모습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겁났을 것이다.
“자신감 있게 다녀. 그게 너를 빛나게 할 거야.”
우리는 휘황찬란하게 꾸며 놓은 영화관이랑 가게들을 돌아다녔다. 영화를 보여준대도, 아이스크림을 사준대도 다 싫다고만 한다. 괜히 사람들이 쳐다보고 무시할까봐 그런다. 자존심 상하기 싫어서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쳐다본다. 피부부터 희게 느껴지고, 부자들이나 타고 다니는 차를 어쩔 수 없이 타고 다니니, 늘 사람들이 쳐다본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조금 흰 피부를 가진 황인종이 먼 우주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져서 쳐다보고, 폭발하는 태양아래서 만난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처럼 보이는지 쳐다본다.
나는 누군가를 쳐다보고, 누군가는 나를 쳐다본다. 다양한 각도로 쳐다본다. 잘나서도 쳐다보고, 못나서도 쳐다보고, 특이해서도 쳐다본다. 보다가 좋으면 더 보고 싶고, 싫으면 안보고 싶다. 아니다. 자꾸 보다가 싫어질 수도 있고, 억지로 보다가 좋아질 수도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어라.’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눈으로 부딪혀야 잘 보인다. 나는 물끄러미 당신을 쳐다본다.
.........중앙일보 2014. 8. 16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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