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랑에세이집 [ 나에게 마법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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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성, 진지 포트 / 박성희

연지아씨/박성희 2017. 2. 16. 16:29

마법의 성, 진지 포트

                                            박 성 희 수필가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인지 애초에 흙 대신한 물체인지 어디를 봐도 돌투성이다. 그 신비로운 돌산꼭대기에는 돌로만 지어진 왕과 왕비의 성이 있다.

   왕의 성 라자기리와 왕비의 성 크리시나기리. 얼핏 여성의 펑퍼짐함을 닮은 돌산엔 왕비의 성이, 남성의 우뚝 솟은 모습을 한 돌산엔 왕의 성이 세워졌다. 왕과 왕비는 따로 떨어져 살았다. 한참 휘돌아 걸어서 두개의 험한 돌산을 오르내려야 만날 수 있었다. 고봉준령 사이에서 그들은 얼마나 만나 사랑했을까.

   북쪽 왕비의 성을 오른다. 맨발로 돌계단을 밟으니 아침햇살을 받아 따뜻하다. 작은 돌, 큰 돌, 바위는 묵묵히 인고의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나를 반기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냐고 호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왕비를 받들어 모시던 신하들 같이. 그러나 오늘은 내가 이 성의 첫손님. 나의 성이다.

   터벅터벅 돌산을 오를수록 늘어나는 원숭이들. 저희들끼리 까불고 놀다 내게 달려든다. 먹을 거 내놓으라고, 그냥 가는 것 어림없다고. “저리가.” 소리치니 으르렁 대며 화내고 흘레 한다. 그리곤 바로 분출한 하얀 정액을 손으로 받아먹기 바쁘다.

   땀범벅이 되어 정상에 오르자 나타난 성은 온통 돌의 신천지. 마법이 아니고선 감히 만들어질 수 없는, 돌만으로 건축된 성이 우뚝 서 있었다. 집회장과 곡물창고, 힌두 템플과 이슬람 모스크가 있다. 큰 돌로 만든 탱크와 막사, 마구간도 있다. 라자 데싱 왕을 화장할 때 그의 젊은 여왕도 함께 화장했다는 장소로 가본다. 을씨년스럽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 산하는 하염없이 아름답건만 그들은 이곳서 한 서린 시절을 바쳤다니 안쓰럽다.

   건물들은 모두 돌을 쪼개고 깎아 돌과 돌로 연결돼 지어졌다. 돌기둥에는 힌두 신들과 여러 문양이 조각돼 있다. 오랜 세월 풍파에 닳고 닳은 폐궁이지만 육중하고도 아름답다. 저 멀리 가장 높은 돌산 암벽 꼭대기엔 왕비가 그리워했을 왕의 성 라자기리가 보인다. 왕비는 이곳서 치맛자락 펄럭이며 왕의 동태를 살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 둘 올라오고 있다. 파리서, 이태리서, 멕시코서 왔다한다. 인디언들은 주로 연인끼리 올라와 성벽이나 큰 바위 밑에서 몰래 연애를 한다. 젊은 날 가시버시로 왕과 멀리 떨어져 살았던 왕비를 생각하니 애잔해진다.

   왕의 성 라자기리을 가기위해 차를 타고 서쪽으로 달린다. 이 성 입구에는 결혼회관, 곡물창고, 감옥, 템플, 갤러리가 있다. 벌써부터 많은 원숭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 올라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한다. 이곳 진지 마을까지 두 시간 반을 달려왔으니 가자, 왕의 성으로. 원숭이의 습격이 겁났지만 기사의 수호만 믿고 오른다. 왕비의 성보다 높고 험해서 많이 힘들다. 원숭이들은 계속 알짱거리고 덤빌 태세다.

   돌산 암벽 꼭대기에 외적의 침입을 대비해 만든 천연의 요새. 남인도 여러 왕의 시대를 거치고 성채로서의 역할을 했다. 인도인의 전쟁과 항쟁의 역사가 담긴 곳이며, 총과 대포로 침입한 프랑스제국주의자들에게 무너져 패배의 슬픔과 눈물이 담긴 곳이다. 한때 프랑스에게 뺏겼다가 인도가 되찾은 유적지를 한 걸음 한걸음 오를 때마다 그들이 치열하게 싸웠을 과거를 떠올리며 피비린내를 맡는다.

   돌산 중간쯤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푸른 물로 가득한 연못이 있었다. 왕비의 성 꼭대기에도 연못이 있었는데. 첩첩 돌뿐인 돌산에 연못이라니 무슨 마법일까.

   순식간 원숭이가 내 가슴으로 달려들어 가방을 낚아챘다. 손잡고 있었던 어린 아들이 깜짝 놀랐다. 나도 손살 같이 뺏긴 가방을 낚아챈다. 원숭이가 사나운 얼굴로 뾰족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든다. 사람들이 몰려와 막대기로 겁을 주자 간신히 내뺀다. 가슴이 벌렁벌렁 다리가 덜덜덜. 가방을 목에 걸고 나무 막대기를 구해 원숭이를 쫓으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원숭이들은 배가 고팠다. 어디를 봐도 돌투성이니 따먹을 열매가 없다. 그저 돌 틈에 간혹 돋아난 풀이나 뜯어먹고, 저희들끼리 흘레할 때 나오는 액으로 충당할 뿐. 욕정보다는 굶주림 때문인 것 같다.

   한참을 올라가도 정상은 멀다. 집채만 한 암벽을 몇 개 넘어야 한다. 여기저기서 원숭이들이 계속 나타난다. 졸졸 따라 오고, 으르렁 거리고, 나무 막대기로 제압하며 걷는데도 무섭다. 어쩌면 원숭이들은 성주가 있던 시절 충성스런 군사였거나 성지기가 아닐지.

   돌산이 험해선지 중간에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저 커다란 암벽만 오르면 된다. 마지막 돌계단을 오르자, 10세기쯤 완벽했던 큰 성채가 폐허 된 채 나타났다. 하늘 아래 바로 햇살을 받아 눈이 부셨다. 외적의 침입 때문인지 모진 세월의 더께 때문인지, 왕비의 성에 비해 많이 무너졌지만 남아있는 성의 자태는 위엄을 드러내고 묘한 기운을 기세당당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이 성을 통치했던 왕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들리고 병사들의 긴장감이 감돈다. 그들은 여기서 적의 행태를 살피고 살폈을 것이다. 때때로 왕은 저 아래 왕비의 성을 지그시 바라봤을 것이다.

   나는 무슨 연유로 인도의 역사가 돼버린 이곳까지 왔는지 생각에 잠겼다. 필시 전생에 어떤 연관이라도 있었던 건 아닌지. 발길이 어떻게 여기까지 닿았는지.

   성채가 있는 정상에서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잡힐 듯 지나가고, 아랫마을은 한없이 평화롭다. 밤이 되면 별빛 달빛 아래서 그 옛날 성주였던 왕과 왕비의 혼령이 환영으로 나타나 다 못한 사랑을 불태우리라.

20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