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고아 바다로
박 성 희
그냥 갔어.
아무 생각 없이 갔어.
그런데 그 바다 예뻤어. 달콤했어. 부드러웠어.
나는 베일리스를 마신 것처럼 취해 갔어. 크림, 초코렛, 카라멜, 아이리쉬 위스키가 들어간 리큐르. 몽롱해졌지. 황홀난측해졌지.
나는 바다에 몸을 맡긴 채 가만히 있었어.
바다는 계속 파도치며 물방울을 쏟아냈어. 맑게 부서지는 물방울은 얇은 파도가 되어 내게 다가왔지. 그 파도는 넓고 길었어. 파도는 연신 나를 날름날름 핥아댔어. 아, 간지러워. 어지러워. 달떠져.
살랑살랑, 몽글몽글한 거품들.
카푸치노를 엎지른 것 같았지. 하얀 거품은 스스로 레이스 무늬를 만들어냈어. 나는 거기 해변, 찰진 모래바닥에 누웠어. 바다에 누웠어. 내 위로 엎치락뒤치락 바다가 밀착해 왔지. 달보드레하게. 스르르 눈이 감겨왔어. 순간 세상은 온통 바다와 하늘과 나뿐.
파도는 연거푸 내 몸을 덮치며 속삭였어.
다 잊으라고. 이 순간 모든 것 다 지우라고. 그저 자기만 느끼라고. 그래, 다 버렸어. 속세의 모든 걱정 다 던졌어. 자유로웠지.
저녁놀이 지고 있었어.
바다는 금빛으로 물들었지. 온 세상천지가 금빛 물결로 가득했지. 새들도 사람들도 금빛금빛. 파도가 세게 뒤채이기 시작했어. 하지만 내게 다가오는 파도는 여전히 부드럽고 달콤하고 은밀하게 다가와 속삭였지. 별과 달이 합세해 더욱 감미로운 밤이었지. 꿈같은 밤이었지. 바다의 속삭임과 바다 냄새로 가득했던 밤.
나는 새벽에도 바다와 함께 했어.
자꾸만 내미는 바다의 혓바닥을 느끼며 찰진 모래 위를 걸었어. 길고도 긴 해변이었어. 푸른 아라비아 해는 아름다웠지. 내게 닿았던 바닷물은 인도양으로 흘러가 오대양과 합쳐지겠지. 수증기가 되고 물고기의 놀이터가 되고 누군가의 발길에 닿겠지.
며칠간 바다만 봤어.
바다 생각만 했어. 바다가 그렇게 좋았어. 꼼짝없이 온종일 온밤을 바다와 함께 했는데도 좋았어. 그 붉은 공단 같은 모래사장의 감촉도 얼마나 좋던지. 마냥 보고 싶은 바다였지. 떠나기 싫은 바다였지. 바다, 하늘, 나. 그리고 저 너머 수평선.
바닷물에 씻겨 진 심신은 정갈해졌어.
평화로워 졌지. 복잡했던 마음이 단순해 졌지. 수행자처럼 깨달아갔지.
언제든 세상만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바다가 생각날 거야. 그 바다 내 가슴 속에 담겨둘래. 그리고 그곳으로 달려갈래. 인도에서 가장 작은 주 고아. 거기 서부 해안 그 바다. 파도가 고왔던 고아의 바다!
....2016. 4. 2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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