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랑에세이집 [ 나에게 마법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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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뉴스 내작품

꽃화장 / 박성희

연지아씨/박성희 2015. 7. 24. 22:00

                                                꽃화장

                                                                                       

                                                                                     수필가/ 박 성 희

 

 

   

 

   활활 타고 있다.

   불꾳은 솟구치고, 연기는 온 동네를 휘감는다. 시체 태우는 냄새가 퍼진다. 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논다. 바로 옆에서 한 영혼이 저 하얀 연기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고 있는데. 한줌 재가 되고 있는데.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색색의 꽃잎들이 길 위에 뿌려져 있었다. 죽은 자가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꽃잎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화장장까지 쭉 화려한 꽃길이 이어졌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숨을 쉬던,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사람이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우리 아파트 앞에서 들것에 실려 온 시신은 아무 말이 없다. 그저 그 몸을 뒤덮은 한 자락 천위에 한 줄로 길게 엮은 다홍색 꽃다발만이 햇빛에 반짝일 뿐.

   사계절 내내 더운 나라여서 죽은 뒤 바로 화장을 하지 않으면 부패가 시작되기 때문에 서둘러 화장을 한다. 친지를 부르고, 시장에서 꽃을 준비하고, 폭죽을 탕, 터트리고, 화장장으로 간다.

   나는 얼른 창문을 닫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데려와 몸을 씻겼다. 이미 그 탄내는 집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학교와 우리 아파트 앞 공터가 화장장이었던 것이다. 그 앞에는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불구덩이 위에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죽은 자를 지켜본다.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이다. 누구는 생전 고생만 했을 것이고, 누구는 부귀영화를 누렸을 것이다. 저마다 삶의 과정은 다르지만, 뱃속에서 태어나고 죽는 것은 똑같음을 인정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역사가 끝맺음 되고, 오욕칠정에서 벗어나 유체이탈 된 영혼은 이제 한없이 자유로워지리라.

   인도에서 화장을 하지 않는 자는 죄가 없다고 여기는 거지, 어린이, 처녀, 수행자, 임산부다. 이들은 죽으면 그냥 강물에 수장을 한다.

   죽은 자를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는 화장. 수백만의 윤회를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은 화장을 선호한다. 그래서 화장장으로 유명한 저 갠지스강가에는 불길이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죽음 앞에서도 카스트, 빈부격차는 심한지 부자일수록 카스트가 높을수록 향나무에 좋은 향이 나는 백단향 가루를 뿌리고, 시체가 완전히 타서 재가 될 때까지 태울 수 있는 많은 나무를 사서 화장을 한다. 가난한자, 낮은 계급들은 싼 나무를 조금 사서 화장을 하니 시신을 다 태울 수 없다. 그래서 그 강에는 타다 남은 부분 시신들이 떠다닌다.

   불길은 드세게 타오른다. 타고 또 타고 온 낮과 밤을 태운다. 시간이 갈수록 온 동네를 휘감던 연기는 바람이 이끄는 데로 하늘로 오른다. 한 영혼은 이제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영면에 빠졌을 것이다.

   어제 낮부터 시작된 불길이 계속 되고 있는 걸 보니 브라만족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지 아파트 앞에서 이렇게 대담하게 화장을 해도 누구하나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지켜만 볼 뿐이다.

   꽃을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 카스트 중 맨 밑바닥 수드라, 불가촉천민들까지 그들의 삶에 위안과 향기와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꽃. 아무 때나 머리에 꽂고 다니고, 집안에서나 집밖에 걸어두고, 명절 때나 푸자 때, 언제 어디서든 꽃과 함께하는 그들. 그렇게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꽃들은 죽을 때까지 그들 곁에 있다.

   서서히 불꽃이 사라지는 걸 보니 다 탄 것 같다. 주변에 뿌려졌던 색색의 많은 꽃과 함께 한 사람이 한줌 재가 되었다. 한 영혼은 어디론가 훨훨 날아갔다. 바람처럼, 꿈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