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키스
수필가/ 박 성 희 feelhee9@hanmail.net
“섹스는 할지언정 키스는 하지 않겠다.”
뭇 남성들과 성적 교류를 즐기던 한 여성의 말이다. 섹스와 키스, 둘 다 똑같이 이성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인데, 키스만큼은 쉽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키스는 아무나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전제로 한 행위일 때 행해지는 일종의 의식이다. 입술만은 정결하게 지키겠다는 의지다.
처음 만난 남자와 키스를 한 적이 있다. 만나기 전 몇 번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감정을 가졌던 사이였지만 첫 대면에서 쉽게 끌리기가 힘든 법인데, 그날 난 그에게 딱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아니, 완전히 꽂혔다. 그는 6월의 숲 속에서 만난 싱싱한 나무 같았다. 은근히 낭만적이며 생생한 생명력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서른 즈음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이상적인 매력남으로 기억된다.
‘사랑은 눈으로 든다’는 예이츠의 시처럼 내가 굳게 믿고 있는 사랑의 정의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점점 그의 분석할 수 없는 분위기, 이상에 불타는 눈빛, 빛나는 지성미가 좋았다. 우리는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었다. 그리곤 대로변 앞 백화점 정원에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키스를 했다. 아주아주 오랫동안 열중했다. 몰입했다. 행복했다. 사랑했다. 기뻤다. 그리고 내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만큼 만족했다.
입술과 입술의 부딪힘, 혀와 혀의 엉킴, 타액과 타액의 교환. 심장이 뛰고 맥박이 빨라지고 호르몬 분비가 시작됐다. 그 색깔과 맛은 ‘키스 오브 파이어(kiss of fire)’라는 칵테일과 닮았다. 달콤하면서도 야릇한, 주체할 수 없는 감정 폭발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것.
소설 <테스>에서 테스는 단 한 번의 키스로 인해 순결, 사랑, 생명을 빼앗긴다. 알렉이라는 남자의 일방적인 성적욕구로 한 여인의 인생은 행복과 멀어지면서 불행을 가슴으로 껴안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여인 중에도 한 번의 충동적 키스로 인해 결혼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아이 둘을 낳고서도 그녀의 남자는 의처증을 버리지 못하다 결국 이혼하여, 그녀는 모든 것을 떠안은 채 험난한 세상살이를 하고 있다.
키스란 서로가 눈에 들어서, 마음을 가지고, 감정을 느끼며, 영혼을 함께 나누는 행위다.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지우고 싶은 그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가 좋아서 하는 키스만큼 짜릿한 전율이 있을까.
탐닉하고 싶은 그림 중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그림이 있다. 만발한 풀꽃들 위에서 두 연인이 키스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황홀하다. 황금빛으로 채색된 배경에 몽환적인 그들의 표정은 볼수록 에로틱하고 매혹적이다. 슬며시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키스방’에는 키스하고 싶은 성인 남성이면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 잠시나마 진짜 애인처럼 이야기 나누고 키스하고 스킨십도 할 수 있다. 애인이 없는 사람은 외로움을 달래고, 애인이 있는 사람이면 미리 키스 교습을 받기도 한다. 그곳의 키스 매니저들은 대부분 어린 여성들이다. 순수, 순정, 순결을 고이 간직할 나이에 키스를 돈으로 환산한다니 슬픈 일이다.
셰익스피어는 ‘키스는 사랑의 도장’이라고 말하고, 빅토르 위고는 ‘그것은 불꽃에 입을 갖다 대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폴 베를렌은 ‘미소의 정원에 핀 접시꽃’이라고 예찬한다. 그만큼 키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다정하고 친밀하게 해 주며, 연인에게는 뜨거운 열정의 표시이자 대체(代替)적 행위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는, 초콜릿이며 마약이며 마술이다. 키스할 때 마구 분비되는 화학물질 탓이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옥시토신,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도파민,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천연환각제 페닐에틸아민과 뉴러펩티드가 로맨틱한 감정을 고양시켜 폭풍 같은 사랑을 하게 만든다.
나는 가끔 외롭거나 쓸쓸해질 때, 삶이 힘겹거나 불안해질 때, 꿈처럼 꿈결같이 다가와서 끌어안고 키스했던 그 남자를 생각한다. 그때 그 키스를 추억한다. 숨결과 숨결을 느끼며, 환희와 쾌감만으로 출렁거렸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내 인생 최고의 클라이맥스로 각인한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오직 키스에 푹 빠지고 싶다. 생에 지친 한 영혼을 달래 주고, 위로받고 싶다. 열락에 도달하고 싶다.
2011.10.<월간문학>10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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