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랑에세이집 [ 나에게 마법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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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닉네임 / 박성희

연지아씨/박성희 2013. 2. 17. 08:38

<수필과 비평>2013.2월호에 발표/ <광주뉴스>2013.3.8일자 게재 

                                                                      

                                          가면, 닉네임


 

                                   

                                                                                                                                          수필가  박 성 희
   맨몸, 맨얼굴, 본명, 본마음에는 숨김이 없다.
   원초적 순수와 진실만 있다. 맹자의 인성론에서도 사람은 선한 본성을 타고난다는 성선설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거부 한다.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하고, 가명을 쓰고, 마음에 덧칠을 한다. 덩달아 행동도 그렇게 따라 간다. 어떠한 환경이나 욕망으로 얼룩이진다.
   얼굴을 가린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몰래 움찔 뒤로 물러서게 된다. 가면 쓴 사람, 복면 쓴 사람, 마스크 쓴 사람, 썬 그라스 쓴 사람,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들은 왠지 나를 거북하게 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쓴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왠지 몸과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행동할 것 같아서다. 얼굴의 일부분을 가린다는 것에 왠지 거부감이 든다.
   인터넷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분명한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닉네임이라는 가명을 쓴다. 현실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만으로도 불분명한데 닉네임이라는 가면까지 쓰니 더욱 조심스럽다. 닉네임이라는 이름으로 여기 저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활개를 치고 다닌다. 각종 비방의 글, 악플을 남기고, 심지어 해킹, 바이러스를 전염시켜 컴퓨터를 완전히 못쓰게 하여 꼼짝달싹 못하게도 한다. 순식간에 아무 이유도 없이 아무에게나 고통을 주고, 쾌감을 얻는 것 같다.
   나도 닉네임을 쓰는 곳이 있다. 사교적 공간인 카페나 블러그, 채팅 공간에서 쓰고, 정보와 상담이 필요한 관청이나 병원 사이트에서도 쓴다. 나를 완전히 감추는 닉네임으로 마음대로 이야기하고 주장하고 상담할 수 있다.
   실제로 나를 드러내놓는 본명을 쓰는 곳도 몇 군데 있는데, 그곳에서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을 자제하게 되고, 양심이 있어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걸림돌이 되어 조심스럽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 아닌 타인이 되는 자유를 맛보기위해 닉네임을 선호하고 사용하는 건가.
   닉네임은 오래전 문인, 학자, 예술가들이 본 이름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으로 아호, 자호라는 이름으로 써왔다. 자성적,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실제로 어떤 기대치에 못 미치지만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로젠탈 효과를 노리고 짓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외모나 성격, 행동 과시를 위해 짓기도 하고, 자신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종교와 직업, 영화나 책속의 주인공, 보석이나 꽃 이름 같은 자아도취적 나르시시즘을 내포하기도 한다.
   언젠가 내 글을 어느 카페에 올렸는데, 그 글을 보고 ‘들국화’ 라는 닉네임을 쓰는 회원이 얼마나 나를 비난하고 글을 혹평하는지 많은 회원들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려 혼이 난적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악성 댓글로 나를 괴롭히는 거였다. 당장 “너나 잘 하세요!”, 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내 글로 발가벗겨진 상태여서 그럴 수 없는 것에 속만 상했다. 그 사람이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알 길은 없다. 닉네임만 알 뿐, 모두 비공개로 되어 있어 아무것도 모른다. 그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한 이후부터는 아무리 닉네임이라도 인터넷에서는 머뭇머뭇하게 된다.
   닉네임이라는 가면을 쓰고 정치적 목적으로, 어느 한 개인의 미움을 표시하기 위해,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과격한 언어를 남발하는 것은 폭력이며 가해행위다. 함부로 휘두른 막말에 공인들의 인생이 결딴나고, 아무 연고도 죄도 없는 사람들이 눈물과 상처를 받고, 생명을 뺏길 수도 있다.
   가면, 탈은 속에서 품은 뜻을 감추고 겉으로 진실인 것처럼 꾸미는 의뭉스런 얼굴이다. 베니스의 가면 축제나 안동하회탈 축제는 피지배층이 지배층이 되고, 지배층이 피지배층이 되거나, 평소 자신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숨은 욕망을 연출해보며 억눌린 감정을 마음껏 발산하며 풍류를 즐긴다. 축제 기간만큼은 신분과 성별, 사회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며, 좀 미친 모습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가면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사이버와 닉네임이라는 이중 가면을 쓰고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들리지 않는 총성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돈, 욕망, 사랑, 섹스, 게임, 한탕주의가 난무하는 사이트들. 직접 볼 수 없는 사이버세상이니 얼마나 더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사회의 존경받는 지위나 신분에 이른 출세한 사람의 대다수가 언제 가면이 벗겨질지 모른다는 망상으로 불안해한다고 들었다. 스스로를 부정하며 참 모습이 아닌 이중성에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것이다.
   순자의 인성론에서 제기된 성악설조차 유학의 어느 한 지류에 불과한 것인지, 태어나서 교육을 받고, 도덕적 수양을 쌓고, 후천적으로 인간됨을 습득해 가며 인간 본성을 잃지 말아야 함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의 아니게 가면 아닌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위에 또 하나의 가면, 닉네임으로 현실과 비현실 세계를 넘나든다.
   사람들의 얼굴과 심보에 악착같이 들러붙어 다니는 가면을 확 벗겨버려서, 다시는 못 쓰고 다니게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참 자아 찾기, 양심적으로 살기, 당당해지기, 닉네임 옆에 내 본명 써 넣기를 연습하며 살아가다보면 숨김이 없는 나, 진정한 나로 거듭날까. 가면, 닉네임이라는 이중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