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랑에세이집 [ 나에게 마법걸기 ]

모든 진지한 바람은 마법처럼 반드시 이루어진다! 순간순간 살며 사랑하며 부여잡고픈 기억을 담다!

각문예지 내꺼 월간문학,현대수필,에세스트,수필비평등12년블로그개설이후부터

고개 숙인 사람들 / 박성희

연지아씨/박성희 2013. 2. 21. 11:34

       <현대수필>2013.봄호, <중앙일보>2013.3.1.(canada), <광주뉴스>2013.3.22일자에 발표

 

                                                           고개 숙인 사람들

 

 


                                                                                                                                            수필가 박 성 희
   숨이 막혔다. 무서움이 질식할 듯 엄습해왔다. 나는 방금 누군가로부터 내 몸을 슬라이딩하여 하얀 관 속으로 들어왔다. 눈을 감았다. 똑바로 누워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내 몸은 하얗게 긴장되어 바짝 굳어 갔다.
   직립하지 못해서였다.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엎드려서도 나는 늘 고개를 숙였다. 생활이 그랬다. 컴퓨터 앞에서, 책 앞에서, 습작 노트 앞에서, 육아와 집안일에서 나는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처음엔 관이 고요했다.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떴다. 악, 너무 좁다. 하얀 관이 나를 꼭꼭 묶어버렸다. 살려달라고, 꺼내 달라고, 발버둥 치며 난동을 부릴까.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 순환하던 피돌기가 일순간 핏대를 세우며 회오리쳤다. 공포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커피숍에서, 도로에서, 횡단보도에서, 여행지에서, 가는 곳 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뭔가에 흡족히 빠져 열중하고 있다.
   바로 내 눈 위에서, 꽉 막혀버린 하얀 관이 살기 찬 모습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전율이 일었다. 불안감으로 속 근육이 거세게 조여졌다. 온몸이 가로막혀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나는 처음부터 이 괴로움을 또 다시 시행해야 한다. 참자. 참아야 산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모두 스마트폰에 홀렸다.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사색을 하거나 감상 하는 모습은 없고, 오직 스마트폰 속에서만 허우적댄다. 주변 의식 없이 자기만의 세계에서 쾌락을 느끼고 있다.
   소리가 들렸다. 북소리와 쇳소리가 합쳐진 불규칙한 소리다. 시끄럽다. 두 귓구멍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말라고 귀마개를 하고, 그 위에 헤드셋으로 한 번 더 감싸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쾌하게 들려왔다. 곧 그 소리들을 뒤덮으려는 헤드셋으로부터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그래, 이 음악에 귀 기울이자. 나를 구원해 줄것이다. 
   그들이 이용하는 앱은 주로 사교성 카카오톡, SNS, 게임, 위험표시 없이 남발하는 뉴스, 새롭고 자극적인 사소한 관심사, 다양한 지적 정보들을 빠르게 훑는 일이다. 오로지 사이버 속, 스마트폰에만 관심 있다. 주변은 관심 없다. 당장의 세계에서 누구와 함께 하고,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자연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직립한 척추 뼈의 가장 위쪽, 머리뼈 직하방에 위치한 7개의 목뼈를 분석하기 위해 자기공명영상실 속에 있다. 목 부위 척추 뼈인 경추와 경추 사이의 신경, 추간판, 동맥을 세밀히 관찰 분석하는 중이다. 일분일초가 이리도 더딘데, 30분은 너무나 길다. 어서 이 관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스마트폰에 갇혀 있다. 현실을 바로 맞서 직시하지 않고, 한 꺼풀 씌워진 기기에 자기만의 시간을 감금시킨다. 고개를 들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스마트폰의 마법에 걸려 있다. 연인, 친구, 동료, 가족이 옆에 있어도 상관없다는 듯 점령당해 빠져 나올 생각을 않고,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몸을 계속 똑바로 유지하세요.”
   방사선실 기사의 목소리가 음악소리와 겹쳐서 들렸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의사의 판독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로 들어갔다.
   “목이 많이 안 좋은가요?”
   “3,4,5,6,7번이 좋지 않습니다. 4개월간 약물과 약침, 물리치료를 병행하고 시간과 돈과 고통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도 스마트폰에 몰입하고 있다. 침대에서, 화장실에서, TV와 컴퓨터 앞에서도 손바닥에 스마트폰을 쥐고 산다. 자기 딴엔 영어 공부와 유용한 정보를 탐색한다지만, 나는 왠지 대면 상대로 불필요한 사람인 것 같아 소외감과 외로움에 지친다. 사랑에 목마른 난 그때마다 그 스마트폰을 낚아채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다.
   뒷목을 중심으로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시키고, 온열을 쏘이며 전기침을 꽂고, 레이저, 울트라사운드, 경추견인치료를 받는데 찌릿찌릿하고 따끔따끔하다.
   오늘도 가는 곳마다 와이파이 3G 4G LTE 구역에서 스마트폰을 즐기고 있는 사람, 사람들을 만난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 따라가는 사람들. 그 똑똑함(smart)에 고개를 숙이듯, 더불어 자기를 눌러 예로 돌아가야 어짊이 된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하고, 사람의 됨됨이가 바르고 수양을 쌓은 사람처럼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지기까지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스마트폰이 없다.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기 싫고, 금 같은 젊은 시간을 저당 잡히기 싫어서다. 고독을 누릴 자유, 생각을 즐길 자유가 내겐 언제나 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독할 줄 모르는데서 온다고 한다. 사람들은 고독에 집중하지 않고, 고독을 피하려고 스마트폰에 매달린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려하고,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도 단절시키려 한다.
   직립한 채 세상을 둘러본다. 간접적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아는 것 보다, 직접 세상을 더 넓게, 더 자유롭게, 더 자세히 직면해서, 더 많이 사랑 하고, 더 많이 감탄하리라! (2013.2.20.)

joongang.ca에서 확인가능....(2013.3.1일자)B면 문학란...
박성희 / 수필가. 한국문인협회회원, 청춘수필집 <연지아씨>있음.